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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종교사 입문 - 기독교의 역사 (카톨릭, 동방정교, 개신교)

by Reminiscence19 2022. 6. 13.

기독교의 역사 (가톨릭, 동방정교, 개신교) - 세계 종교사 입문

  • 기독교란 무엇인가
  • 기독교와 기독교의 역사
  • 동/서방 기독교 분열 이전의 역사
  • 분열 이후의 동방 기독교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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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기독교란 무엇인가

1. 기독교란 어떠한 종교인가

기독교는 흔히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창시된 종교’로 알려져 왔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역사적 인물에 의해서 기독교라는 새로운 종교의 토대가 구축되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예수가 구약의 종교적 전통을 완전히 뒤엎는 전혀 ‘새로운 종교’의 창시를 의도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구약의 종교적 전통을 완성하고자 하였다. 그러한 예수를 인간 이상으로 생각하고, 그를 예배의 대상으로 고백하는 사람들이 경험한 종교를 기독교라 한다.


2. 기독교인은 무엇을 믿으며 사는가

①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신앙 - 그리스도에 대한 것 (성서적 구속사에 있어서 기초적이고 지배적인 사상)
② 부활신앙 - 그리스도의 삶에 대한 것 (초대 기독교가 보였던 폭발적인 생명력의 한 원인)

3. 기독교인은 무엇을 지향하며 사는가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을 지향하며 산다.


II. 기독교와 기독교의 역사

기독교는 흔히 서구의 종교로 인식되어왔으나 그 기원에 있어서 서방적이기라기보다는 오히려 동방적이었다.


III. 동∙서방 기독교 분열 이전의 역사

1. 기독교의 일반적 배경

기독교의 창사지로 알려지고 있는 예수는 로마제국의 지배하에 있던 팔레스타인의 남부지역인 유대 지방에서 태어났으며, 생애의 대부분을 이 나라의 북부지역인 갈릴리에서 보냈다.

이 팔레스타인은 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 점이 기독교가 세계 종교로 성장하는데 결정적인 조건의 하나가 되었다 할 수 있겠다.


기독교가 성립되던 당시 세계는 로마제국에 의해 정치적인 통일이 이루어졌던 시대였다. 또한 로마제국이 정치적 통일의 이념으로 삼았던 것은 다름 아닌 헬레니즘 문화였다.


결국 역사적 기독교(Historical Christianism)는 유대 문화와 헬라 문화라는 두 가지의 극히 다른 문화체계의 만남 속에서 출발하였다고 할 수 있다.


2. 예수의 삶과 가르침

예수의 삶과 가르침에 대한 자료는 비기독교적 자료와 기독교적 자료 두 범주로 나누어진다.

비기독교적 자료: <유대 전쟁사>, <아피온 반박문>, <유대 고대사>
이와 같은 증거들은 역사적 인물로서의 예수에 대한 증언을 해주고 있다.


기독교적 자료: 정경과 외경, 신약 가운데서도 4 복음서는 이에 관한 집중적인 자료를 남기고 있다.


예수는 30세가 되었을 때, 요한에 의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았다. 세례 후 예수는 즉시 갈릴리에서 천국을 선포하고 병든 자를 고치기 시작하였으며, 곧 많은 무리들이 따르게 되었다.

예수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에게 하나의 심판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이었다.

예수는 종교적인 가르침에 있어서 자주 기성의 권위에 도전했다.

그는 율법학자들과 극단적인 바리새파들의 위선을 책망하였다. 또한 종교적인 가르침에 대한 예수의 새로운 해석은 안식일에 대한 예수의 새로운 해석에서 첨예하게 나타났다.

예수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라고 선언했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종교적 관념의 전통을 뒤집어엎은 것이었다. 종교적 가르침에 있어서 이러한 예수의 혁명적인 발언은 유대 전통과 충돌을 빚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가르침은 여전히 율법서와 예언서의 정신을 따르고 있다.


예루살렘에 입성한 예수는 여러 가지 사건을 통하여 유대인과 갈등을 빚었고, 결국 로마제국에 의해 체포되어 식민지 정치범에게 가해지는 가장 잔혹한 처형 법인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는 사형을 당했다.

그러나 그는 부활하였다. 이 부활로 인해 예수의 추종자들은 절망에서 기쁨을 보았으며, 새로운 종교를 열성적으로 전파하기 시작하였다.


3. 원(시) 기독교: 신약성서와 사도시대

초기 기독교는 분명히 유대교의 한 종말론적 종파로서 출발하였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 직후인 30년 후에 예루살렘에 기독교회가 생기게 되었는데, 이때에 벌써 두 계열의 교회가 있었다.

하나는 히브리어를 사용하는 본토박이 유대인들로 구성된 교회(유대교적 전통을 비교적 고수하려 함)이고, 다른 하나는 희랍어를 사용하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로 구성된 교회(유대교 전통에 보다 급진적인 입장을 취함.)이다.


기독교의 헬라화: 기독교는 바울에 의해 상당한 변화를 경험함. 이러한 작업은 기독교를 세계 종교로 끌어올리는 뒷받침이 되기도 하였다.


4. 고대 기독교의 형성과 사상적 전개

사도행전을 보면 기독교는 다음과 같이 전변 했음을 알 수 있다.

①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는 유대․기독교적 시기.

② 유대․기독교로부터 이방인 기독교로 넘어가는 과도기.
③ 사도 바울의 이방인에 대한 전교 활동.

초기 기독교는 그 전승에 있어서 다양한 출발점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다양성은 내용의 풍부성을 낳기도 하였지만, 어떤 경우에 있어서는 기독교적 메시지의 본질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였다.

이러한 위협은 정통과 이단의 시비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였으며, 주요한 것으로는 영지주의, 마르시온, 몬타누스주의가 있다.


이런 기독교적 메시지의 다양성에 직면한 교회의 반응 가운데에서 중요한 것은 ‘사도신경(Apostles' Creed)’의 형성이다.


5. 로마제국과 기독교

초기에 로마제국은 기독교를 유대인들 사이의 내분의 하나로 보았기 때문에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3세기 초 셉티무스 세베루스 황제 때에 제국 내에서 통일된 종교정책을 취했는데 이런 정책은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의 강한 반발을 일으켰다.

그래서 로마는 이들의 확장을 막고자 밀라노 칙령이 발표되기 전까지 엄청난 탄압과 박해를 하였다.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종식되었다.


동로마제국이 형성된 후 콘스탄틴은 비록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삼진 않았지만, 그의 개종과 기독교에 대한 공인은 향후 기독교의 성격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6. 중세 크리스텐 돔의 형성과 발전

중세의 기독교가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을 보존하고자 하는 노력은 크게 두 가지를 통하여 이루어졌다. 이 두 개의 조직체는 다름 아닌 수도원 주의와 교황 제도(the papacy)였다.

7. 동/서방 기독교의 결별

로마의 분열 이후 여러 가지 논쟁들로 말미암아 동․서방 기독교의 반목은 날로 심화되었다.

그러던 중 최종적인 분열은 11세기에 일어났다.

교황이 남부 이탈리아의 희랍인들에게는 라틴관습을 강요하자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미카엘 세룰라리우스는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라틴교회들을 폐쇄하였다.

이에 항의하기 위하여 훔베르트 추기경이 콘스탄티노플로 왔지만, 훔베르트와 미카엘 세룰라리우스는 서로 저주하는 결과를 낳았을 뿐이었다.

결국 1054년 6월 16일 총대주교가 성찬식을 거행할 준비를 하고 있을 때에 훔베르트 추기경은 성 소피아 성당 제단에 파문 칙서를 놓았다.

그리하여 동방과 서방 사이의 돌이킬 수 없는 결별이 시작되었으며, 이러한 상호 저주는 1965년 로마 교황 바오로 6세와 동방정교회의 전교회 총대주교 아테나고라스 1세가 1054년의 파문 처벌을 폐지함에 있어서야 기각되었다.



IV. 분열 이후의 동방 기독교의 역사

1. 개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동․서방 기독교의 분열은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된 사건이 아니라, 기원 후 처음 몇 세기 동안 발생한 동․서방 기독교의 갈등관계가 중세시대까지 계속되면서 점점 악화되어 폭발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후 몇 세기에 걸친 동․서방 기독교의 합동 시기가 있기도 하였지만, 서로 각각의 다른 걸음을 계속해왔으며, 결과로 오늘날 기독교는 로마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티즘 그리고 동방 기독교권으로 크게 나누어지게 되었다.


동방 기독교는 크게 동방 정교회, 동방 독립교회, 동방 귀일 교회의 3 주류로 구성되며, 역사적으로는 초기, 비잔틴 기, 오스만 터키 지배기, 근․현대 등의 4기로 나눌 수 있다.


2. 비잔틴 기

1000년경의 비잔틴 기독교는 “이 세계에는 제국과 교회가 공종적으로 힘을 모아 이끌어나가는 ‘단 하나의 보편적 기독교 사회’, 즉 오이쿠메네만이 있어야 한다”는 이념을 기지고 있었다.

이러한 오미쿠메네의 이상은 1054년의 동․서방 기독교의 상호 저주로 한풀 꺾인 듯하였지만, 이 시기를 전후하여 이 시기를 전후하여 비잔틴 기독교는 동유럽 전역에 걸친 전교의 확장을 시도하였다.

1054년 동․서방 기독교의 분열 당시 비잔틴 기독교는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중동, 발칸반도, 러시아 등지에 분포하고 있었으나 이제 비잔틴 기독교의 중심권이 점차 동부 유럽의 슬라브 민족에게로 옮겨지게 된 것이다.


3. 오스만 터키 지배기

오스만 터키에 의한 동로마제국의 멸망은 동․서방 기독교의 결별을 완결지은 역사적 사건이었다.

피렌체 공의회의 동․서방 기독교의 합동 결정은 오스만 터키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자 완전히 효력을 잃게 되었다.

비잔틴 제국의 몰락과 함께 러시아를 제외한 그리스 정교회, 루마니아 공국(Principalities), 슬라브 정교회 등이 오스만 터키의 지배하에 들어갔으며, 이러한 상황은 19세기 초까지 계속되었다.

4. 러시아의 기독교

러시아에서 기독교의 역사가 시작된 것은 9세기경 키예프 주민들이 콘스탄티노플과 접촉하면서부터였다. 러시아의 기독교는 988년 키예프의 블라디미르가 세례를 받음으로써 활발해지기 시작하였다.

13세기에 타타르인이 러시아에 침입하면서 러시아인들은 동북부로 이주하였고, 기독교의 중심도 z;예프에서 모스크바로 옮겨졌다.

러시아 기독교의 중심이 모스크바로 옮겨진 후 1448년 러시아 교회는 독립을 선언하였다.


5. 근대, 현대

근대의 동방 기독교는 두 가지 사건으로 커다란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다. 그 두 가지 사건이란 1917년의 러시아 혁명과 제1차 세계대전이다.

이 두 사건으로 말미암아 많은 동방 정교회 신자들이 이만의 길을 나섰다.

기독교의 초기에 있어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기독교의 역사적 전개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처럼, 20세기의 정교회 디아스포라도 정교회 세계의 전체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V. 분열 이후의 서방 기독교의 역사

1. 개관

서방 기독교의 두 주류는 로마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티즘이다. 로마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티즘이 나뉜 것은 16세기에 일어난 일련의 종교개혁 사건에서부터였다.

2. 중세 크리스텐 돔의 몰락과 개혁에의 요청

샤를마뉴와 그 후계자들의 통치에 의해 이루어진 서방 제국의 통일성은 카롤링거 제국의 쇠퇴로 인해 다시금 무너지게 되었다.

노스맨으로 불렸던 스칸디나비안과 마자르족의 침략으로 제국의 권위는 약화되었으며, 상대적으로 교황권은 강화되었다.

교황권이 일시적으로 강세를 보이면서 교황좌를 둘러싸고 암투가 벌어지는 등 교황 제도가 타락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상황에 대한 개혁을 갈망했으며, 그것은 수도원 개혁운동, 재속 성직자 개혁운동, 교황 자신의 개혁운동 등으로 나타났다.


3. 종교개혁

존 위클리프
그리스도의 교회는 교황 및 눈에 보이는 유형적 계급제도가 아니라 미리 구원받도록 택정함을 받은 자들로 이루어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몸이라고 주장. 또한 성경은 교회의 소유이며, 오직 교회만이 성경을 정확하게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존 후스
자격 없는 교황에게는 복종할 필요가 없다면서, 성경이야말로 교황을 포함한 모든 기독교 신자들을 심판할 수 있는 궁극적 권위라는 주장을 하였다.


마틴 루터
마틴 루터에 의하여 종교 개혁은 본격적으로 제기된다. 루터는 성 베드로 성당 건축 완공을 위한 자금 마련을 위해 면죄부를 판매한 것에 반대하여 95개 신조문을 비텐베르크의 본성 교회의 문에 못 박았다. 이러한 행동은 외부세력에 의한 독일인의 착취를 혐오하던 많은 사람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츠빙글리
재침례파는 로마 가톨릭뿐만 아니라 프로테스탄티즘에도 반기를 들고 나섰는데, 교회를 세속 사회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자발적 공동체로 이해했다.


존 칼빈
주로 제네바에서 활동했으며, 예정설과 직업 소명설이 칼빈주의의 중요한 특징이었다.

4. 종교개혁 이후의 로마 가톨릭사

(1) 가톨릭의 개혁운동
유럽을 휩쓴 종교개혁은 로마 가톨릭으로 하여금 내적 반성을 경험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로 인한 개혁운동은 프로테스탄티즘의 공격에 대한 반작용이 아니라 하나의 적극적인 가톨릭 재건운동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16세기의 가톨릭 재건운동의 핵심은 ‘성경’에 있었으며, 크게 두 가지의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하나는 가톨릭사 전체를 통하여 계속되어온 개혁운동의 하나인 수도회 활동을 통해서 이루어졌으며, 다른 하나는 교회의 제도적 차원 혹은 교황의 주도 아래에서 일어난 개혁운동이다.

16세기에 일어난, 수도원을 중심으로 한 개혁운동 가운데 일부는 고대로부터 전해진 전통적 수도원 규칙을 보다 엄격히 지키고자 하였고(예: 깔멜 수도회), 다른 일부는 16세기의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고자 하였다.(예: 예수회)


5. 종교개혁 이후의 프로테스탄티즘사

(1) 개신교 운동의 새로운 전개
프로테스탄티즘은 통일성보다는 차별성을 보다 강조하는 경향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프로테스탄티즘은 다양한 교파적 발전을 하나의 특성으로 삼고 있다.

종교개혁 사건 이후 프로테스탄티즘은 서방 기독교권 내에서 나름의 독자성을 확보하면서 다양한 발전을 하였다.

이러한 다양성을 크게 범주화한다면 정통주의, 합리주의, 경건주의의 셋으로 볼 수 있다.


출처: 청년사의 '세계 종교사 입문'의 내용을 발췌하여 정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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