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배낭여행 서른 둘째 날 - 타이거 힐 (Tiger Hill)에서 칸첸중가 일출, 다르질링 티베트인 자치지구에서
- 이른 새벽 타이거 힐에서 눈부신 칸첸중가
- 배낭여행자에게 온수 한 통의 소중함
- 다르질링 티베트인 자치지구 (Tibetan Refugee Self-Help Centre)
- 티베트의 미래
2월 4일 (월)
이른 새벽 타이거 힐에서 눈부신 칸첸중가
새벽 12:30, 2:00, 3:30, 3:50 분에 매번 깨어날 정도로 잠을 설쳤다. 세계 3위 봉, 칸첸중가 일출 보러 타이거 힐(Tiger Hill)에 가는 지프를 타기 위해서다.
이가 덜덜 부딪힐 정도로 추운 날씨에 떨리는 몸을 일으켜 그야말로 완전무장을 하곤 나갈 준비를 한다. 어제 같이 가기로 한 누나를 깨우러 아래층으로 가니 다들 이제야 일어난 모양이다.
AM 04:10분. 숙소를 떠나 타이거힐(Tiger Hill)로 가는 지프가 출발한다는 시계탑 근처로 걸어간다. 아직 다르질링엔 칠흑 같은 어둠이 짙게 깔려 있다. 군데군데 그나마 있던 가로등도 꺼져 한 치 앞도 보이질 않는다. 인도에서 산 손전등을 꺼내 비춰보지만 영 신통치 않은 빛만 내더니 그것도 이내 꺼진다.
얼마나 갔을까? 신고 있던 슬리퍼의 왼쪽 뒤꿈치가 끈적끈적하다. 에이... 뭐 별거 아니라 생각하고 계속 걸어간다. 약간 밝은 곳이 나와 뒤꿈치를 살펴보니 헉!! 말똥이 어느새 슬리퍼와 발뒤꿈치 사이에 껴 질근질근 반죽이 되어 있다.
으악! 젠장... 추워서 양말을 벗을 수도 없고 대충이나마 손으로 떼어내려 했더니 옷이고 손이고 그놈의 똥냄새가 진동한다. 같이 가던 누님들은 오늘 재수 좋겠다며 웃으신다. 그리곤 나와 멀리 떨어져 거리를 두고 가신다. 흑흑..ㅠ.ㅠ
승객 10명을 꽉꽉 채운 지프는 새벽 4:30분 타이거 힐(Tiger Hill)을 향해 출발한다. 짙은 어둠과 안갯속을 헤집고 시커먼 매연을 뿜어댄다.
중간에 가다 보니 Tiger Hill에 걸어 올라가는 사람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이야... 저 사람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후에 만나 물어보니 새벽 3시 정도에 출발했다고 한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새벽 5시가 조금 넘어 타이거 힐(Tiger Hill)에 도착했다. 아직 도착한 차나 사람이 없는 것으로 보아 우리가 1등인 모양이다.
잠시 후 다른 지프도 속속 도착한다. 바람이 그나마 적게 불어 생각보다 그리 춥진 않다. 어제 케이블카에서 만났던 인도애들은 아침에 엄청 춥다며 어찌나 엄살을 떨며 겁을 주던지... 이 친구들아! 한국의 매서운 추위에 단련된 우리로선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ㅋㅋㅋ
많은 인도인들은 너무나 춥다며 대부분 난로가 있는 카페에 들어가 몸을 녹이고 있다. 물론 우리 같은 배낭여행자들이 밖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다. ㅋㅋㅋ 무척 부러운 눈빛으로 말이다. 으휴~ 그놈의 카페 입장료는 왜 받는 건지... ㅠ.ㅠ
해 뜨는 방향을 향해 바라본다. 아직 어둠이 한창이라 과연 해가 뜰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이 조금씩 푸른빛을 띠기 시작한다. 어라? 근데 안개, 구름이 사방에 자욱하다. 이러다가 칸첸중가도 못 보고 돌아가는 건 아닌가 괜스레 걱정된다.
설마.. 설마... 하며 초조해하는 순간. 저쪽에서 갑자기 칸첸중가가 그 위용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해는 아직 산 위로 떠오르진 않았지만, 미명에 반사되어 찬란히 빛나는 그 설산의 모습이 선명히 보인다. 일출 방향에 몰려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그쪽 방향으로 이동하며 난리 법석을 떤다. 나도 덩달아 그 대열에 합류하여 사진 찍고 구경하고 있다. 마치 빛나는 푸른 보석 같다고나 할까? 기대했던 것보다는 꽤 멀리 있었지만 구름 위로 갑자기 그 모습을 드러내는 바람에 처음엔 무척 놀랐다.
순간 반대편에서 또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다시 이곳에 있던 사람들이 저쪽으로 우르르 몰려간다. 역시 나도 따라간다. ㅋㅋㅋ 알고 보니 구름 사이로 태양이 빼꼼히 보인다. 강렬한 태양빛은 우리뿐만 아니라 저 멀리 칸첸중가도 비추며 아까의 푸른빛을 백색으로 바꿔주고 있다.
세계에서 에베레스트, K2 다음 세 번째로 높다는 칸첸중가... 비록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지만 멀리서나마 내 눈으로 확인했던 순간 왠지 모를 가슴 벅참이 느껴진다. 세계의 지붕을 처음 본 순간, 그냥 이대로 네팔로 가버릴까? 하는 마음이 요동친다.ㅋㅋㅋ
당시 네팔에서 안나푸르나 트래킹까지 하시고 오신 분들은 크게 감동이 없다 하셨지만, 따뜻한 남쪽 인도에만 있던 나에겐 그 감동이 더할 나위 없이 컸던 것 같았다.
그런데 이런... 역시 인도 사람들은 행동도 빠르다. 사진 몇 장 찍고 있다 보니 금세 사람들이 지프에 올라타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해 뜨고 칸첸중가도 봤으니 어서 돌아가자... 전형적인 찍고 턴 관광이다. ^^;;
허나 어쩌나... 같이 왔으니 나도 가는 수밖에... 지프에 도착하니 내가 제일 마지막이다. 아쉬움을 남기며 Tiger Hill을 내려온다. (아쉽게도 필름 자동카메라로 찍은 사진 중에 제대로 볼 만한 사진이 없다. ㅠ..ㅠ)
배낭여행자에게 온수 한 통의 소중함
숙소로 돌아와 더운물을 구할 요량으로 식당에 가보니 오늘은 다행히 전기가 들어온단다. 만세~~~ (오늘도 정전이었다면 가스레인지에라도 데워 달라고 하려던 참이었다. ^^;;)
룰루랄라~ 더운물 한 통을 받아 들고 방으로 올라갈 때의 당시 행복한 기분이란 이루 표현할 수 없다. ㅋㅋㅋ
우선 그 온수 한 통을 찬물과 섞어 세 통을 만든 다음 머리도 감고, 샤워도 하고, 양치질도 하고 나니 흐미... 엄청나게 개운하다. 온수 한 통이면 모든 게 충분하다.
그러고 보면 한국에서 내가 온수의 중요성을 모르고 물을 얼마나 헤프게 썼는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당시 좋은 호텔에서의 온수 샤워는 내겐 엄청난 사치였기에...
다르질링 티베트인 자치지구 (Tibetan Refugee Self-Help Centre)
오후엔 Tibetan Refugee Self-Help Centre라는 곳에 가보기로 한다. 다르질링 중앙 광장을 지나 한적한 길로 접어든다. 또다시 급경사를 따라 한참을 내려가니 티베트인 자치지구가 나온다.
이곳에 와 항상 느끼는 거지만, 이 티베트 사람들은 몽골계라 그런지 생김새나 모양이 한국사람과 너무 흡사하다. 왠지 모를 친근감이랄까? 암튼 그런 것들 때문에 나도 모르게 정이 가는 게 사실이다.
처음 티베트인 자치지구에 들어가 나를 맞이한 이들은 추운 날씨에 볼은 발갛게 트고 콧물 자국이 선명한 꼬맹이들이었다. 자기네들끼리 신나게 놀다 내가 들어가니 반갑게 인사하며 다가온다.
"그래~ 그래~ 나도 반갑다. 헤헤^^"
그 친구들과 조금 놀다가 카펫 공장에 들어가 보기로 한다. 공장은 2층짜리였는데, 1층에서는 기계를 이용하여 실을 뽑고 있었고, 2층에서는 그 실을 이용하여 한 올 한 올 정성껏 카펫을 짜고 있다.
베틀 앞에서 정신없이 카펫을 짜고 있는 아낙의 뒤로 가 인사하니 수줍은 듯 말을 못 한다. 거참... 부끄러워하시기는... ^^;;; 사진 찍어도 되냐고 물어봤더니 어서 찍으라며 베틀 앞에 서신다.
"곤니찌와~"
어라? 그러고 보니 나에게 처음 한다는 말이 곤니찌와네... ㅠ.ㅠ
"아임 코리안 코리아 아세요? 코리아요!"
마지막으로 나름 잘 꾸며진 쇼룸(Show Room)이라는 곳에 들려 이런저런 이 곳 생산품들을 둘러보고, 필통과 숄 등을 사서 나왔다. 기부금도 20루피 정도 조심스레 낸다.
요 며칠간 빨래를 못했더니 신을 양말이 없다. 그나마 하나 있던 양말은 오늘 아침, 말똥의 공격으로 빨랫감으로 전락하고 말이다. 그마저 아침에 샤워하며 모조리 빠는 바람에 내게 마른 양말은 하나도 없다.
다시 언덕을 올라 다르질링 마을로 돌아오는 길. 이 추운 날씨에 양말도 안 신고 맨발에 슬리퍼 차림으로 서 있는 날 한 아이가 불쌍한 듯 쳐다보며 따라온다. 발가락 끝이 빨갛게 변해버린 내 발을 보며 쿡쿡 웃기도 한다. 괘씸한 녀석 같으니라고...^^;;
뭐.. 혼자 올라가기도 심심하고 해서 같이 올라가기로 한다. 그 티베트인 친구 나이는 열여섯이란다.
아까 자치지구를 둘러보며 어떤 비석을 보니 미국이 티베트인들에게 이 지역을 만들어 줬다고 적혀 있던 것 같던데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여긴 인도 땅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질문했더니 한참을 고민 고민한다. 한참 뒤 자기가 영어를 잘 못해 설명할 순 없지만, 그 사실은 맞다 한다. 순간, 마치 어제 한국 역사 설명에 쩔쩔매던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ㅋㅋㅋ
그 친구와 함께 올라오며 영국의 보이밴드 Westlife의 "My Love"를 불러본다. 거참.. 이 히말라야 촌구석에도 POP은 들어오나 보다. ㅋㅋㅋ 가끔 이런 경우 깜짝깜짝 놀란다. 그 외에도 이 녀석은 웬만한 미국의 POP 스타는 다 꿰고 있다. 허허허 ^^;
돌아오던 길에 작은 곰파와 Obsevatory Hill이라는 곳에 들러보지만, 그다지 인상적이진 않았다.
다시 마을로 돌아와 Chowrasta 광장에서 적당히 아이쇼핑도 하고, 엽서도 몇 장 사 친구들에게 적기도 하며, 오랜만에 집에 전화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스위스인 친구 리코는 야크 스웨터 하나 흥정하느라 정신이 없는 모양이다. ^^;;
티베트의 미래
다시 저녁이다. 오늘 숙소 식당엔 새로운 분들이 많이 오신 모양인지 북적북적댄다. 자세히 보니 새로 오신 분들이 아니라 요 아래 Tower View 호텔에 묵으시는 분들이 음식이 이곳이 낫다며 오신 것이다.
세계여행 중이시라는 분들의 이야기도 듣고 인도에만 10번이 넘게 오셨다는 한 40대 아저씨의 여러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여기오니 내 40여 일 일정(나중에 늘어나지만...^^)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다. 기본이 세 달이다.
특히 한국인 아저씨한테서 많은 이야기를 듣고 배울 수 있었다. 특히 티베트에 관련된 내용이 기억에 남는다.
"내 생각에 티베트의 독립은 불가능하다. 아니 끝났다. 내가 12년 전 시킴(다질링 근처에 있음) 지역의 한 티베트인이 운영하는 호텔에 묵었을 때 이야기지. 숙소 주인과 얘기하던 중 당신은 티베트의 독립을 진정 원하냐고 물어봤는데 그 대답이 뭔지 알아?"
"독립을 하든 말든 자기는 상관없다는 거야. 인도가 되었든 중국이 되었든 자기를 안전히 보호해 주는 이만 있으면 괜찮다면서 말이야."
한숨 섞인 아저씨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실제로 이야기해보면 많은 티베트인들이 그러한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아 특히 티베트 라싸에 갔을 때 티베트 농부들이 이런 말을 나한테 하더라고. 중국이 자기들을 통치한 이후에 비닐하우스가 도입되어 한겨울에도 쉽게 채소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고 말이야. 난 솔직히 이 말을 듣는 순간 티베트의 독립은 끝났구나 라고 생각했지."
이밖에도 아저씨의 아시아 여행기와 삶의 가치관에 대한 내용들은 술기운이 오를수록 더욱 진지해져 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아저씨는 78학번으로서 박정희 정권 말기, 학생운동도 좀 하신 모양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지금은 박통의 과실보다 공을 더 높게 평가한다 하신단다. 자기가 아시아의 수많은 나라들을 두루 돌아보며 내린 결론이
"가난한 나라엔 민주주의가 없다" 라 하시며 말이다.
나라를 많이 걱정하시고(^^) 생각하시는 아저씨의 이야기는 정말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하지만, 전혀 지루하거나 듣기 싫은 소리는 아니었다.
참고로 네팔인인 호텔 주인아저씨는 티베트 자치지구 사람들이 무척이나 부럽다고 하신다. 인도 정부에서 학비는 물론 전기료 물세 등 각종 혜택이 무료로 제공된다며 말이다. 그러한 사실에 나도 적잖이 놀랐다.
문득, 이러한 혜택들이 티베트 독립을 방해하는 요인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생활의 안락함이 가져다준 간절함의 결핍이라고나 해야 하나?
이렇게 다질링에서의 마지막 밤이 지나간다.
【 다음 이야기 】
인도 배낭여행 - 다르질링에서 캘커타(콜카타) 가는 길 - DAY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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