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배낭여행 - 모세의 십계명 시내산 새벽 트레킹 -DAY#12

예루살렘, 요르단, 이집트 배낭여행기 - DAY#12 -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시내산 새벽 트레킹, 장엄했던 시나이산의 일출

• 자정, 어둠 속을 헤치며 시내산으로 출발
• 이른 새벽, 달빛 아래 시내산 등산
• 힘겨운 시내산 정상가는 길
• 드디어 정상 도착
• 장엄한 돌산의 일출, 모세의 십계명 시내산
• 시내산 정상, 모세 기념교회, 하산길
• 성 카트리나 수도원
  
  

8월 18일 (월)

자정, 어둠 속을 헤치며 시내산으로 출발

다합에서 자정에 출발한 승합차는 모세의 십계명이 살아 숨 쉬는 시내산으로 밤새 달린다. 낮에 스노클링 한 이후, 낮잠 한숨 자지 않은 상태에서 출발하는 거라 출발한 지 십 분도 채 되지 않아 곯아떨어져 버렸다.

얼마나 갔을까? 잠시 눈을 떠 보니 밖은 칠흑 같은 어둠이다. 승합차의 헤드라이트만이 유일한 빛인 것 같다. 졸린 눈을 비비며 창 밖을 확인하곤 좁은 자리에 다시 몸을 구겨 못 잔 잠을 청해 본다.

새벽 3시... 드디어 시내산 입구에 도착했다. 새벽이라 날씨가 꽤 쌀쌀하다. 시내산이 춥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 어제 산 이집트 문양이 새겨진 갈색 옷을 주섬주섬 꺼내 입는다.

누군가가 얘기하길 시내산은 한, 두 시간이면 쉬엄쉬엄 다 올라갈 수 있다고 했다. 남들보다 체력이 좋다고 말하진 못해도 약하다고도 말할 수 없는 나의 지구력과 끈기에 솔직히 별 어려움 없이 올라가겠거니 생각하였다.

이른 새벽, 달빛 아래 시내산 등산

함께 도착한 일행 모두 시내산 정상을 향해 출발한다. 컴컴한 길을 따라 한 줄로 줄지어 올라간다.

얼마 걷지 않아 낙타를 타고 올라가라고 지겹도록 따라붙는 낙타 몰이꾼들이 나타난다. 어떤 녀석은 한국말로

“낙타~ 낙타” 하며 우릴 부른다. ㅋ

어두운 곳에서 불쑥 나타난 낙타와 시커먼 녀석들 때문에 처음엔 무척 놀랐다. 낙타를 타고 갈 생각은 애당초 없었지만, 혹시나 하여 가격을 물어보니 10$를 내라 한다.

10$면 여기서 얼마나 많은 것을 할 수 있는데, 튼튼한 두 발 놔두고 낙타를 타고 올라가냐? 하며 씩씩하게 올라간다. 함께 간 아주머니들은 3$로 깎으신다고 언성도 높여보지만, 3$는커녕 단돈 1$라도 깎아주지 않는다.

“분명 숙소에서 얻은 정보엔 이렇게 비싸진 않았는데... ” 결국, 그동안 만난 심술 탱이 이집션들 때문에 도무지 믿음이 가질 않아 모두 씩씩하게 걷자고 하신다.

“그러죠 뭐 ^^;; 전 어차피 돈도 없답니다. ㅋㅋㅋ”

시내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낙타길이고 하나는 끝없는 계단이 이어진 길이다. 낙타 길은 낙타가 가는 길이라 붙여진 듯한데, 정상까지 꾸불꾸불 꽤 먼 거리를 돌아가지만, 경사가 그리 급하지는 않은 길이고, 계단길은 거리는 낙타 길보다 짧지만 경사도 급하고 길도 험한 길이라 한다.

여행자 대부분이 정상으로 올라가는 새벽엔 낙타길을 이용한다. 구불구불 이어진 낙타 길을 따라 올라간다. 옆으론 10$짜리 지폐 한 장을 이집션들에게 안긴 이들이 낙타를 타고 앞질러가지만, 뭐 그다지 부럽지만은 않다.

문득 산을 오르다 뒤편을 바라보았다. 깜깜한 새벽에 정말 많은 이들이 시내산을 오르고 있었다. 손에 손에 랜턴을 들고 줄지어 올라오는 모습... 주위에 빛이라곤 별빛과 달빛밖에 존재하지 않고, 흔들리는 랜턴 빛의 행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산 아래로 이어져 있는 모습은 그 어떤 작품보다도 멋진 빛의 예술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난 그 예술에 동참할 수 없었다. 문제는 내 랜턴... 여행 떠나기 전에 지하철에서 구입한 1,000원짜리 랜턴을 가져갔는데, 글쎄 그걸 얼마나 썼다고 와디럼 사막에서 몇 번 장난쳤더니 전구가 나가버린 것이다.

다합에서 숙소 애들한테 꼬마전구 좀 구해보려 애를 써봤지만 쉽게 구할 수 없었다. 정말 딱 1000원어치만 그 기능을 다한 듯하다. 하지만, 보름은 아니었지만 반 이상 찬 달빛은 산을 오르는데 어떠한 어려움도 주지 않았다.

달빛이 이렇게 밝았다니... 그러고 보면 우리 인간은 필요 이상의 빛을 만들어 내며 자연이 선물한 소중한 빛을 묻어버리고 있는 셈이다.

힘겨운 시내산 정상가는 길

한발 한발 올라갔다. 한 시간 반쯤 올라가니 이제 함께 출발한 아주머니들이 보이질 않는다.

나이 많으신 한 아주머니는 도저히 힘들어 안되겠는지 중간에 내려가셨다 하고, 팀 내에 있던 대학교 1년생 여자 친구들도 이미 하산했다고 한다. 올라가다 보니 나와 다합에서 만난 누님, 그리고 팀에 있던 중학생 녀석 3명이 나름 선두그룹(?)을 형성하고 있는 듯하다.

솔직히 너무 힘들었다. 땀은 비 오듯 쏟아지고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은 나를 더욱더 지치게 만든다. 저기가 목표지점 이겠거니 생각하고, 올라가면 또 이어져 있는 야속한 길... 게다가 가져간 물은 이미 떨어진 지 오래다.

계속 산을 오르다 보니 낙타에서 사람들이 내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제 다 온 것인가? 아직 높은 곳이 많은데...’

생각대로 그곳이 끝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정상까지 낙타가 올라갈 수 없기에 사람들을 내려놓은 것이란다. 절망...

거기서부터 이어진 길은 길도 제법 험하고, 계단으로 되어 있어 한 층 한 층을 올라가는데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다. 게다가 길은 좁고, 사람들은 계속해서 올라오다 보니 중간에 잠시 휴식이라도 취했다가는 뒤로 줄이 쫘악 밀려버리기 십상이다.

나중엔 이를 꽉 물고 올랐다. 소리도 질러보고, 주님도 불러보고 ㅋㅋㅋ 그렇게 힘들게 올랐다. 낙타 길로 올라올 때 힘들었던 것은 힘든 축에도 끼지 못할 정도다.

혹, 이 글을 보고, 남자가 무슨 엄살이 그리 심하냐고 비꼴지는 몰라도 애초에 오르기 쉽다는 생각을 가지고 오른 나로선 무척이나 힘들었다. 모든 것이 사람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이번엔 그 마음을 잘못 먹은 듯...

"에고! 에고! 나 좀 살려 주소~~~"

드디어 정상 도착

드디어!! 천신만고 끝에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정상엔 이미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날씨가 꽤 추워 옷을 질끈 동여매곤, 일출 보기 좋은 장소를 찾아 앉았다. 차갑고 딱딱한 돌 위에서 기다리지 말라며 매트리스를 빌려주는 사람들도 보인다.

시계를 보니 아침 6시... 아직 어둠이 한창이다.

정상에 옹기종기 모인 전 세계에서 온 수많은 사람들은 나와 마찬가지로 추위, 졸음과의 한판 사투를 벌이고 있다. 함께 올라온 누님은 피곤하신지 내 옆에서 쿨쿨 주무신다. 해 뜨면 깨우라는 한마디만 남겨놓은 채... ㅎㅎㅎ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사람들이 꾸준히 올라오더니 이제 제법 많이 몰린다. 지금 올라오는 사람들에게 내가 있는 자리는 부러움의 대상인 듯하다. 얼핏 보니 함께 출발한 아저씨, 아주머니도 보인다. 이야.... 정말 대단하신 분들이다. 중간에 다들 포기하실 줄 알았는데...

장엄한 돌산의 일출, 모세의 십계명 시내산

카메라를 삼각대로 고정시켜 놓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동일한 곳의 사진을 찍어보았다. 별 변화 없이 아직은 어둡기만 한 줄 알았는데, 여러 장의 사진을 이어보니 저~쪽 산 너머가 점점 밝아지고 있다.

하늘에 총총히 보이던 별들이 사라지고, 산 너머가 주홍빛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그동안 온통 까맣게만 보였던 산들도 이제 서서히 그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 새벽 3시에 산을 오르기 시작하여 아침 6시에 드디어 시나이산 정상에 도착하였습니다.

▲ 점점 밝아오는 대지를 바라보며 추위와 한바탕 싸움을 벌입니다.

▲ 드디어 태양이 떠오르려 하나 봅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내가 첩첩산중에 있음이 실감이 난다. 점차 그 빛을 찾아가는 산야는 굽이굽이 그 모습을 드러내며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다. 이 광경을 지켜보는 수많은 사람들은 자연이 선사하는 이 멋진 공연을 보며 탄성을 자아내고 있다. 사진기의 셔터 소리만 울린다.

▲ 드디어! 수줍은 듯 얼굴을 내밀어 줍니다.

▲ 올라오며 힘들었던 기억이 싹 잊혀지는 듯

그리고...

드디어 저 멀리 태양이 짠~ 하고 솟아올랐다. 한줄기 강한 광선을 내뿜은 태양은 점점 그 굵기를 더해가더니 이내 자신을 바라보지 못할 정도의 빛을 발산한다.

해발 2,000m가 넘는 시내산 정상에 오른 사람들이 정적을 깨고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지른다. 너무너무 멋있었다. 아니 장엄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했다.

올라오며 힘들었던 기억들은 어느새 잊히고, 일출의 감동과 시내산 정상에서 바라본 주변의 황량한 돌산들의 장관이 그 잊힌 자리를 채워주고 있다.

▲ 이 장관을 보기위해 전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 해가 뜨고 시내산의 모습이 파노라마 처럼 펼쳐졌습니다.

▲ 온통 황량한 바위만 가득한 시내산... 흙 한줌 보기 힘들었던 산이었습니다.

▲ 더워지기 전에 다들 서둘러 하산하기 시작합니다.

 

시내산 정상, 모세 기념교회, 하산길

일출이 끝나자 사람들이 하나 둘 하산하기 시작한다. 조금만 지나도 참을 수 없이 더워지는 여름 시나이 반도의 특성 때문이다.

하지만, 시내산 정상의 모세 기념교회는 들러봐야지! 이 교회는 모세가 이곳에서 40일 40야를 머물렀다 하여 지어졌는데, 안으로 들어가려 하니 문도 잠겨있고, 분위기가 순번을 기다려야 하는 분위기인 듯싶어 밖에서 사진만 찍곤 돌아섰다.

▲ 시내산 정상의 모세 기념교회를 뒤로하고 하산을 시작합니다.

이젠 하산할 시간...

그 많은 사람들이 한 줄로 줄지어 하산하기 시작한다. 나무는커녕 푸른빛조차 발견할 수 없는 황량한 돌산의 모습은 시간이 지날수록 숨을 턱턱 막히게 한다.

내려올 때엔 아까 올라왔던 낙타 길 대신에 계단길로 내려왔다. 수도원의 수사들이 만들었다는 3,570개의 계단을 하나하나 내려오며 수사들의 신앙이나 노력에 대해 한번쯤 생각했어야 했지만, 사람이 간사한지라 무척이나 가파르게 만들어 놓은 계단을 탓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 한줄로 줄줄이 계단을 따라 내려갑니다.

▲ 가도 가도 끝없는 길

▲ 하산길, 이제 서서히 더워지기 시작합니다.

중간에 오르막 하나 없는 끝없는 내리막 계단을 가다 보니 이젠 뒤꿈치가 당긴다.

저~ 아래에 성 카뜨리나카트리나 수도원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침에 그 앞을 걸어왔겠지만, 어둠 때문에 몰랐던 수도원인 성 카트리나 수도원... 걸어가면 금방 갈 듯 보이지만 한참을 가도 그냥 그 자리에 있는 듯 보인다.

다리는 점점 더 후들거린다.

성 카트리나 수도원

만세! 드디어 시내산을 내려와 수도원 앞에 섰다! 그늘에 앉아 완전히 뻗어버린 나... 한참을 멍~ 하니 있었다. 11시에 우리를 태울 봉고가 온다 했는데, 시간이 아직 두 시간여 남았다.

한참을 쉰 후 거대한 수도원 내부를 개구멍 같은 곳을 통해 들어가 보았지만, 동유럽에서 워낙에 화려하고 좋은 수도원을 많이 봐서 그런지 내게 크게 와닿는 감흥은 별로 없었다.

▲ 저~ 아래 성 카트리나 수도원이 보입니다.

▲ 성 카트리나 수도원에 도착했습니다.

▲ 수도원을 뒤로하고 전 다시 다합으로 돌아갑니다.

슬슬 더위가 심해지기 시작할 즈음, 승합차가 도착하였고, 몸을 실어 다시 다합으로 돌아왔다. 오는 길은 피로에 지쳐 역시 잠만 잤다.

너무나 고마운 팀을 만나 공짜로 볼 수 있었던 시내산 일출, 내겐 평생 잊지 못할 멋진 추억 하나를 선사해 주었다. 비록, 몸이 힘들어 완전 녹다운되었었지만, 고진감래라 했던가, 후에 돌아온 그에 대한 보답은 너무나 달콤하였다.

아주 오래전 대학생이던 학창 시절, 그리스, 터키, 동유럽을 거쳐 이스라엘, 요르단, 이집트를 배낭여행했던 기록 중 일부를 이 공간에 정리하여 올립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 느낌과 지금과는 전혀 다른 2003년 8월의 기록이라 여행 정보를 찾는 분들께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치열하게 방랑했던 젊은 날의 기억을 기록하고자 예전 일기장과 저화질 사진들을 다시 들춰 봅니다.

- Reminiscence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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